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키신저-저우언라이 회담 (문단 편집) ==== 닉슨 방중 계획 발표 ==== ||우리는 [[리처드 닉슨|당신]]과 [[마오쩌둥]]이 역사의 한 장을 넘길 수 있는 정지 작업을 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래에 관해서 아무런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와 중국 사이에는 깊은 이견과 오랜 고립의 해들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그들은 정상회담에서 대만과 다른 주요한 문제들에 관해서 완강한 입장을 취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만약 양국 관계가 신랄하게 될 경우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적이 될 것입니다. 중국인들에 대한 나의 평가는 그들이 극도로 이념적이고 그들의 신념의 강도는 맹신적인 것에 가깝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자기네들이 설정한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신뢰도와 정확성의 기교가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과정을 마스터하면 우리는 혁명적 진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겁니다.|| || 귀국 후 키신저가 작성한 보고서 || 7월 15일 밤, 닉슨 대통령은 NBC 방송을 통해 중대발표를 하였다. >"나는 오늘밤 영원한 세계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 큰 진전이 있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지난 수년 동안 내가 누차 지적했듯이 7억 5천만 인구를 가진 중화인민공화국의 참여 없이 안정된 세계 평화는 있을수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여러 통로를 통해 미국-중국의 관계 정상화를 추구해 온 이유입니다.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 나는 나의 안보담당특별보좌관인 헨리 키신저 박사를 베이징에 파견, 저우언라이 수상과 회견하게 했습니다. 베이징과 미국에서 동시에 발표하기로 된 성명 전문을 발표하겠습니다. ><헨리 키신저 보좌관과 저우언라이 수상은 베이징에서 1971년 7월 9일부터 7월 11일까지 회담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고자 하는 닉슨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저우언라이 수상은 중국을 대신해서 1972년 5월 이전 적당한 시기를 택해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초청했다. 닉슨 대통령은 이 초청을 기쁘게 수락했다. 미중 지도자들의 회담은 양국 간의 당면 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양국의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이어 로저스 국무장관이 재미 외교 사절단을 모아서 키신저와 저우언라이의 합의를 알렸다. 전 세계가 놀랐으며 존 슈미츠를 비롯한 일부 우익 강경파는 국제 공산주의에 투항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중화민국]] 그러니까 타이완에서도 "우방과의 사전협의나 통고 없이 그와 같은 결정을 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며 야비한 흥정이다."라고 비난했다. 중국과 대립하고 있던 소련 역시 분노했고 일본의 [[사토 에이사쿠]] 내각도 충격을 표시했다. 또한 키신저는 세계적인 외교관으로 부상하였으며 7월 17일 뉴욕타임스는 키신저를 '닉슨의 조타수', '불가해한 서양주의자'라고 평하면서 "칵테일 파티의 호스트로 환상을 자아내게 하고 냉정한 지성과 노련한 수완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세계사를 통찰하는 능력자"라고 칭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